동시대의 미디어 이용 관습에 대하여
1. ‘연성’의 연원과 실례
‘구글’을 열어 ‘잭
엘사’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면 정체 모를 수많은 일러스트들이 나열된다.
여기서 ‘잭’은 피터 램지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가디언즈>의
주인공이고 ‘엘사’는 그 유명한 <겨울왕국>의 여주인공이다. 위 두 작품의 세계관은 전혀 겹치지 않으며 3D 모델링, 렌더링 기법 또한 다르기에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종(種)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많은 ‘연성러(1차 창작물에 대한 2차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들은 이 두 인물을 성적인 맥락 안에 엮어내고 있으며, ‘잭 엘사’라는 검색어에 뒤따르는 다양한 자동완성 검색어들은 다수가
이러한 ‘연성물’들을 찾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연성은 무엇인가? 오타쿠들의 위키피디아인 ‘엔하위키’에
따르면 연성이란 개념의 연원은 일본 ‘마이니치방송’ 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인 <강철의 연금술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품은 연금술이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들은 이를 이용해 물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로부터 유래한 오타쿠 용어인 ‘연성’은 오리지널한 1차
창작물이나 이로부터 파생된 2차 창작물로부터 또 다른 글이나 그림같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뜻하는데, 앞서 언급한 잭과 엘사의 예시처럼 주로 같은 작품 내의, 혹은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제된 성적 맥락에 놓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러한 N차 창작물들을 ‘연성물’이라
부른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특정 세계 내에 입체적으로 위치해 있는 캐릭터들을 배경으로부터 탈각시킨
뒤 오직 캐릭터 설정의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성물은 보통 서사를 배제한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자연히 포르노그라피로 흐를 가능성도 높다.
본고는 비예술가들의 특수한
창작 행태인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연성’이 탈역사화된 역사관의
한 징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징후가 문화적 파국을 곧바로 지시한다고 보진 않으며, 그 두 가지 실례를 짧게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론과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론을 호출할 것이다.
2. 시뮬라크르로서의 연성물
‘비非오타쿠’에게 이러한 N차 창작물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본래의 설정에서
기대하기 힘든 인물 관계 구도가 이야기가 배제된 채 비슷한 패턴들로 반복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작에선 성적 암시를 발견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성별과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성적 맥락 안에 놓인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연성물들이 원작만큼 ‘잘’ 그려졌다는 것이다. 본래의 맥락을 모르는 감상자들이 웹상에서 이를 마주친다면 원작을 오해할 여지가 있을 정도다(‘무엇이 진짜인가?’). 이렇듯 본래의 세계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오리지널하다 볼 수 없는, 그러나 그 세계로부터 얼마간 탈각된 맥락 위에 놓인 이러한 이미지들은
보드리야르의 논의에 등장하는 ‘시뮬라크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뮬라크르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이미지의 4단계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데, 시뮬라크르
이전 단계의 전통적 이미지들은 실재를 재현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여기서 재현은 “지금 당장 현실이 아닌 것을 다시 현실로 만든다는 말”이며, 이 정의는 실재와 재현(혹은 가상)
간의 이중 분할적 구도를 전제한다(장 보드리야르,
1993, p.14). 이러한 재현체계 내에서 이미지는 실재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준거는 실재의 그것과 같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한 이미지란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1:1 축척의 지도와 같이 가장 충실하게 원래의 실체를 재현하고 있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단계에 등극한 이미지가 바로 시뮬라크르로서, 여기서 실재와
이미지 사이를 가로지르던 분할선은 사라진다.
이렇듯 재현의 대상인 실재가
사라짐에 따라 ‘있는 것의 감추기’라는 지시적 기능은 성립할
수 없게 됐다. 이는 감추거나 지시할 실체의 범주가 침식당함에 따라 전통적 존재론이 해체되었기 때문으로, 이제 남은 것은 순전히 기호로 이루어진 언어학적 체계, 즉 파생실재로서의
세계다. 이전의 리얼리티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 이 하이퍼리얼리티로서의 실재는 “대기도 없는 파생공간 속에서 조합적인 모델로부터 발산되어 나온 합성물”이다(장 보드리야르, 1993, p.16). 이를 구성하는 ‘기호’들, 원본도 사실성도
없이 실재의 의미에 앞서 존재하는 기호들은 임의적으로 병치되고 조합되며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를 만들어간다.
오타쿠들의 연성물 또한 실재에
대한 미메시스적 의태로서의 세계관을 포기하고, 이를 ‘조합적
모델로서의 합성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시뮬라크르라 볼 수 있다. 원본이면서
원본 아닌 시뮬라크르의 모순적 존재론은 본래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모델’들과 결합하며 무한하며 순환적인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트위터의 ‘덕계(오타쿠의 계정)’을 경유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조금씩 다른 연성물들은 이를 증명한다.
3.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실례로서의 연성물
보드리야르의 논의를 배경에
놓은 뒤, 일본 사회로 눈을 돌려 연성이라는 독특한 문화 형식의 연원을 더 구체적으로 추적해보자. 보드리야르가 사회적 현상이 더 이상 리얼리티가 아닌 스펙터클 형식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현상을 목도하며
‘사회적인 것의 종언’을 선언했을 즈음 일본에선 전공투 운동이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김홍중, 2013, p.2). 전공투
운동은 억압적이며 폐쇄적이었던 당시 분위기를 깨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 규범을 건설하기 위한 일본 사회 내의 전례 없는 움직임이었는데, 이후 폭력 투쟁으로 지나치게 경도되는 모습을 보이자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은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 규범의
갑작스런 와해, ‘역사의 소멸’을 배경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문화적 형식이 발생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전공투의 몰락을 징후로 “커다란 이야기(모더니즘적 역사 혹은 사회적인 것 – 필자)의 조락凋落”이
이루어짐에 따라 모더니즘적 역사관이 결정짓던 거대한 가치 규범들은 소규모 집단들의 미세 규범들로 교체됐다(아즈마
히로키, 2007, p.55-63). 미메시스의 불가능성을 초래한 커다란 이야기의 빈 자리는 이제 ‘파생실재’의 한 양상이라 볼 수 있는 집적된 정보로서의 평평한 역사관, 데이터베이스적 역사관을 요청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를 “커다란 비이야기”의 대두라 명명한다(아즈마
히로키, 2007, p.80). 이제 창작자는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나름의 ‘프로토콜’을 가지고 정보를 취한 뒤 ‘표층(스킨)’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방법론을 ‘데이터베이스 소비’라 칭한다. 여기엔 발자크와 같은 사실주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재와 역사를 원근법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도, 발전적이며 입체적인 인물상도 없다. 특정 프로토콜에 맞춰 구성된 정보의 소규모 집적물인 ‘표층’만이 있을 뿐이며, 감상자는 이로부터 데이터베이스의 어떤 부분을 읽어내느냐에
따라 다른 방식의 표층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요컨대 데이터베이스 소비에 있어서 표층은 심층이 아닌
또 다른 표층(데이터베이스를 읽어내는 감상자의 시선)이 결정한다.
이러한 경향에 맞춰 일본 문화
산업 또한 지각 변동을 겪게 되는데 그 대표적 징후가 ‘재패니메이션’
혹은 ‘망가’ 내러티브에 대한 기획 이전에 캐릭터
기획이 먼저 오는 것이다. 이전까지 집적된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나름의 프로토콜(여기서는 독자의 페티시즘 자극)을 거쳐 새로운 캐릭터가 형성되며, 이 캐릭터의 생성은 다시 다른 캐릭터의 파생으로 이어진다. 연성이란
행위 양식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이 인터넷의 대중화와 결합하며 태동한 것이다. 이렇듯 연성이라는
문화적 형식의 정립은 ‘커다란 이야기’가 ‘커다란 비이야기’로 교체됨으로써,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적 도식을 원근법적으로 설정하던 역사가 해체되어 “오직 가능한 것만이 현실화되기 위해 도착하는” 2차원적 데이터베이스만이
현존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빌렘 플루서, 2001).
4. 데이터베이스 연성 = 문화적 모라토리움?
본고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연성의 여러 실례들은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독특한 갈래로, 역사 혹은 사회적인 것의 조락 이후
대두한 포스트모더니티의 징후가 문화적 형식으로서 제유적으로 현상한 결과라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며 무한정 증식하는 시뮬라크르의 횡적 확장은 엇비슷한
표피들만을 대량생산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파산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때 일본 내에서 ‘문화적 모라토리엄’이라고까지 우려된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예시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 중 영화 <어벤저스>와 일본의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를 들 수 있겠다.
<어벤저스>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만든 할리우드
식 스펙터클 연성물로, 각기 다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마블
코믹스’ 사의 코믹북들의 서사를 병합하여 새로운 서사를 창출해낸 디지털 영화다. 여기서도 캐릭터 설정이 내러티브의 반절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의 연성물로부터 구분해주는 지점은 서로 다른 세계관들이 몽타주되며 일으키는 서사적 효과다. 양상을
달리 하나 결국 미국의 현실로 수렴되는 다양한 세계관들이 중첩되자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데서 생기는 미국의 고민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역사로서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를
허구적으로 연성함으로써 다시 현재에 대해 (다소 유치한 선악 구도의 탈을 쓰고) 발언한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무라카미 다카시는 동경예대 출신의 팝 아티스트로, 오타쿠의 시각을 전유appropriate하며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비평적 거리감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데이터베이스 소비 특유의 페티시즘에 매몰되지
않은 채 그 외관만을 의태하려 하며, 이를 통해 그러한 현상이 지닌 역사 비평적 요소를 강조하여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원본 없는 시대’, ‘역사 없는 시대’라는 작금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은 채 이를 조망할
수 있는 메타적 시점과 전략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질문은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데이터베이스 소비 방식을 의태해 메타적 관점에서 동시대를 조망한다 한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티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는가. 과연 인류는
플루서가 예찬한 바 있는 – 그러나 허무주의의 뉘앙스도 함께 전달한
- 피상성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다시 입체를 바라볼 순 없는 것인가.
<참고문헌>
김홍중(2013). <사회로 변신한 신과 행위자의 가면을 쓴 메시아의 전투>.
<<한국사회학>> 제47집
제5호.
빌렘 플루서(2001). <코무니콜로기>. 김성재 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아즈마 히로키(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역. 파주: 문학동네.
장 보드리야르(1993). <시뮬라시옹>. 하태환 역.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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