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회색분자’, 그리고 가장 보통의 비평 - ‘K팝스타 시즌3’ 수용자 연구

회색분자’, 그리고 가장 보통의 비평
- ‘K팝스타 시즌3’ 수용자 연구



1. 서론

본고는 다음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a. 수용자의 정치적 스펙트럼(정치적 태도attitude와 강도intensity)은 수용자들이 대중문화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 해독 위치와 관련이 있는가?
b. ‘해독 위치에 따른 즐거움의 양상은 어떠한가?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앞서, 필자는 정치적 사안을 해석하는 태도인 정치적 스펙트럼과 텍스트를 해석하는 태도인 해독 위치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현상태(status quo)를 유지하고자 하며 이를 개선하는 데 있어 좀 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보수주의를 지향할수록 지배적 해독자에 가까우며, 반대로 진보주의를 지향할수록 타협적 해독자내지는 대항적 해독자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각각의 해독 위치에서 수용자들이 느낄 즐거움은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 선호된 의미(preferred meaning)’에 대한 이들의 태도와 관련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예를 들어 지배적 해독자의 경우 선호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재미를 추구하며, 타협적 해독자는 이를 올곧이 수용하는 대신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덧대는 데에서 재미를 찾는다. 반대로 대항적 해독자는 텍스트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이 의미를 덧대는시도를 하지 않음에 따라 프로그램의 향유를 포기한다는 것이 필자의 예상이었다.

이러한 연구 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필자의 지인들로 표본을 구성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정치 성향에 대한 별도의 간단한 인터뷰 이후, 프로그램의 재미와 공정성에 대한 이들의 인식,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관여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래의 표에서 표본의 이름(가명)과 나이, 직업과 특기할 만한 특징을 명시했다.

가명(나이)
직업
비고
김순기(51)
약사
중도 우파
김하영(24)
대학생
중도 좌파,
시각디자인 전공
오세창(56)
연출가

중도 좌파,
정당 활동했었음
박연주(26)
대학원생
중도 좌파, 인디밴드 보컬, ‘본부스탁활동 외 학내외 정치적 사안 참여
심순덕(24)
대학생
좌파, 아마추어 DJ, ‘본부스탁활동 외 학내외 정치적 사안 참여


2. 표본 수용자의 해독 위치(reading position)

본고의 이론적 토대로써 쓰인 중간과제 ‘K 팝스타 시즌 3 의 수용자는 누구인가?’에서는 K팝스타3를 독해하는 수용자의 입장을 스튜어트 홀의 해독 위치이론에 따라 지배적(dominant/hegemonic), 타협적(negotiated), 대항적(oppositional) 위치로 범주화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인터뷰에서 드러난 수용자들의 시청 의지(프로그램 충성도), 심사평의 적합성에 대한 태도, 포맷의 공정성에 대한 태도, 포맷에 대한 관여도(개선의 필요성을 느끼는 정도)를 기준으로 표본을 나눴다.

먼저 시청 의지가 매우 높고, 심사평의 적합성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으며 공정하다고 생각한 김순기는 지배적 해독자로 분류됐다. 그는 포맷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며, 그렇기에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오세창, 김하영, 박연주는 모두 타협적 해독자로 분류됐다. 이들은 꽤 높은 시청 의지를 보였으며, 심사평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분명히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있으며,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즐거움의 관점에서 포맷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대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었다.
심순덕은 타협적 위치와 대항적 위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프로그램 충성도는 매우 낮았으며, 심사평 시청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대항적 해독자의 면모를 보였으나, 포맷에 공정성에 대한 거부감이 낮고 관여도 또한 낮아 앞서 말한 중간자적 해독 위치를 견지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시청 의지가 낮으며 이에 대한 거부감을 직접적으로 피력하는 대항적 해독자는 표본에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 수용자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이러한 해독 위치의 스펙트럼 간의 상관관계가 꽤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관심은 많으나 정치적 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며 평소에 보수적 견해를 자주 피력한 김순기는 프로그램에 내재한 선호된 의미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반면, 당원으로서 약간의 정당 활동을 하고, 진보 성향의 일간지를 즐겨 읽는 오세창은 그보다 더 타협적 위치에 가까웠다. 마찬가지로 진보 성향의 일간지를 읽으며 SNS에서 이에 대한 논평을 내놓는 대학생 김하영, 학내 자치활동에 참여한 적 있으며 과거엔 공개적으로 정치적 토론을 일삼던 대학원생 박주영은 오세창보다 더 타협적 위치에 가까웠다. 현재도 정치적 견해를 자주 공개적으로 피력하며 과거에 학내 자치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심순덕은 이들보다 더 대항적 위치에 가까웠다. 즉 정치적 우파를 지향하고 이 태도의 강도가 강할수록 지배적 위치에, 정치적 좌파를 지향하고 이 태도가 완고할수록 대항적 위치에 가깝다는 인터뷰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를 정치적인 차원에서 언어화해 피력하는 양상이 프로그램의 수용 양식과 어느 정도 패턴화된 관련성을 가진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련성은 이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는 프로그램의 재미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음 절에서는 인터뷰이들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느낀 즐거움을 구체적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분석할 것이다. 

3. 수용자가 느낀 즐거움의 양상들

3.1. 지배적 해독자 - 김순기가 느낀 즐거움

김순기는 프로그램의 즐거움으로서 참가자들의 신선함을 꼽았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참가자의 선발 기준이 다양하고, 그렇기에 노래나 외모만 출중한 참가자들보다 다양한 가 있는 참가자들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외모가 시청의 유인에 속하지 않은 바, 표본에 속하지 않은 다른 수용자들에게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팬덤기질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참가자의 퍼포먼스 자체가 김순기의 프로그램 충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었다. 발췌된 인터뷰 내용은 이를 입증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설명해주시오(김순기)

A: 요번에? 특별히 없는데요번에 막 짜릿짜릿하게 잘 한 적이 없잖아. (잠시 침묵) 권진아? 처음에 치고 올라올 때. 박진영 노래 불렀을 때.

위에서 김순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피소드)’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로 치환해 해석했고, 스스로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의 순간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떠올린 참가자의 이름도 숙고 끝에 생각해낸 것이기에 이 장면이 수용자의 시청 경험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특정 참가자에 관심이 쏠리지도, 다양한 참가자들의 퍼포먼스 중 기억에 특별히 남는 것이 없다고 밝힌 김순기가 시청을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시청을 계속한 이유에 답이 있었다. 김순기는 시청을 중단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가?’란 질문에 대해 어린 애들이, 자식 같은 애들이 막 열심히 해서 성취해서 매주 성취하고 그런 게 보기 좋잖아. 위대한 탄생도 그래서 보는 건데라고 답했다. 부모로서의 역할을 프로그램에 투영한 뒤 유사-자식으로서의 참가자들이 어려운 과제들을 수행해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이를 돕는 전문가이자 선생님으로, “나보다는 더 많이 음악을 들어보고, 또 뽑아봤겠구나하는 것이 있기에 이들이 내놓는 심사평은 대부분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외모나 노래 실력만 출중하지 않은, 어떤 측면에선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참가자들의 특성은 이러한 감정 이입을 더 용이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볼 점은 자식 같은이란 형용어로 참가자를 수식할 정도로 참가자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처한 꽤나 엄혹한 게임의 룰에 대해선 별다른 비판적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계속해서 경쟁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의 룰을 정당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그렇기에 프로그램의 포맷이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3.2. 타협적 해독자 - 김하영, 박연주, 오세창이 느낀 즐거움

김순기보다 연령대가 낮고(모두 20), 학내외적 사안에 진보적 입장에서 관여한 바 있으며 다양한 채널로 다양한 음악적 콘텐츠를 접하는 김하영과 박연주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참가자들의 독특한 개성과 퍼포먼스를 언급했다. 이들은 여타의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음악적 스타일을 지닌 참가자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사람을 골라 팬질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성의 다른 음악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이들보다 연령대가 높은 오세창(50)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에 집중했다. 각자 사연이 있는 참가자들이 한 가지 목적을 지니고 모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서사에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Q: 참가자 중에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그 이유는? (김하영)

A: 권진아. 일단은, 얼굴이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막 전에 못보던 여자 연예인.. 여자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리고 기존에 아이돌 같지도 않은데 노래도 잘하고독특했어요. 느낌이. 뭐가 독특하냐고? 노래가 젊은 애들 중에는 SM 스타일 이런 애들은 막 바이브레이션만 엄청 넣고 섹시 컨셉 어필하고 이런 애들밖에 없는데 걔는 자기가 각색해서 부르는데 얼굴은 아이돌같이 예쁘고 그래서 특이했어. 

심사위원이란 변수 또한 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김하영의 경우, 인터뷰 중 기획사를 대표해 나온 심사위원의 계열싸움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를 육성하고 추후에 기획사로 영입해야 하는 전문 프로듀서의 취향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 라인을 만들어 심사위원끼리 경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박연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했는데, ‘심사평의 유익함K팝스타3의 가장 재밌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오세창 또한 세 심사위원이 부족한 점을 서로 보충해주며 꽤 재밌는 심사평을 던진다고 언급했다.       

Q: K팝스타3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박연주)

A: 일단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되게 유익하고, 그냥 기술적인 게 아니라 그런 노래를 할 때 감정표현이라든가, 퍼포먼스까지. 기획자 입장에서 얘기를 하니까, 내가 꼭 노래를 하는 사람이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러 모로 참고가 될 것 같다. 뭔가 인문학적으로?
그니까 뭐꼭 인문학적인 건 아니지만 어떤 여자애가 노래를 잘 하는데, ‘그게 니 목소리 아니지이래요. 부를 때마다 목소리가 바뀌니까. 박진영이 갑자기 니 목소리로 부르라고 하는데대답해보니까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러는 거에요.
이런 식의 대화를 하는데, 기술적인 것을 넘어서,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 것 같고. 내가 미학을 전공하니까, 예술에서도 그런 문제가 중요하잖아요. 어디까지 진심이 개입하고. 그런 면에서?

이들이 심사위원의 논평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전문성에 100%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김하영의 경우 “(유희열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자기 가치관이나 프로듀싱 그게 확고해가지고 그게 너무 약간 꼰대 같았다고 말했고, 박연주 또한 약간 한국 발라드를 밀고 나가려는 장르 쿼터를 주는 거 같다고 평가했다. 김하영의 당돌한답변에선 소위 전문가의 비평 시도가 시청자들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프로그램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하는 전문가 이데올로기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이에 대한 메타비평을 하는 수용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장르의 다양성이 심사위원에 의해 일부 제한되는 것 같다고 말한 박연주는 전문적 심사에 대한 심사, ‘메타비평의 구체적 일례를 보여준다. 오세창 또한 박진영 심사위원 특유의 공기 반 소리 반심사평에 대해 맞는 말이지만, 더 넓은 시청자층을 고려해 더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더불어 이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즐거움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의 포맷을 개혁할 구체적인 방안까지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시청을 중단하고 싶었던 순간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던 중, ‘생방송 스테이지에 돌입하자 프로그램의 재미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공통적으로 전했다. 더불어 이들은 시청의 재미가 줄어든 이유를 음질, 화면의 테크닉, 의상, 무대 디자인, 편곡의 상업성 등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했다. 그렇기에 타협적 수용자들은 프로그램 포맷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생방송 에피소드들을 아예 없애는 것을 진지하게 제안하기도 했다.     

Q: 언제 시청을 중단하고 싶었는가? 그런 순간이 있었는가?(김하영)

A: 1, 2 시즌에서도 생방송부터 잘 안봤거든? 생방송부터 잘 안본 게, 그 때부터 실력이 비등하기도 했고 편집 이런 게 제한적이잖아. 생방송이니까. 애들이 심리나 캐릭터 볼 기회가 없어지고 이제 노래만 보여주잖아. 그런 게 좀 재미가 덜 하고생방송이 음질이나 별로 안좋았던 거 같애. 클로즈업도 되고 집중이 잘 되는데 집중력도 떨어지고 약간 촌스러워. (웃음) 의상이나 무대 디자인이나 원래 내추럴한 것보다 너무 조악한 것도 많아서 생방은 잘 안봤던 거 같아. 특히 버나드박 ‘I Believe I Can Fly; 새 날개 그런 거 너무 싫었어. (웃음) 촌스러워.

시청 의지가 높으나 포맷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자신의 즐거움을 확고한 기준 삼아 여러 생산적 제언을 던지는 이들. 중간 과제에서 밝혔다시피, 인터넷 상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는 게시글들도 프로그램의 맹목적 추종자가 아닌 이러한 타협적 해독자가 쓴 글들이었다.

3.3. 타협적 위치와 대항적 위치 사이에서 심순덕의 즐거움

심순덕은 앞서 언급한 수용자들에 비해 시청 의지가 뚜렷하지 않았으며, 프로그램의 선형적 전개를 좇는 대신 유튜브를 통해 파편적으로 시청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콘텐츠를 전반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참가자 한 명(권진아)에 대한 약한 정도의 팬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나마도 두 번 들을 정도는 아니었어내지는 그 정도 하는 애들 홍대에 이런 데 깔리고 깔린 애들인데, 차라리 볼 거면 온스테이지(인디 아티스트를 위주로 네이버에서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를 보겠다고 평가절하했다. 그가 밝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의 정치적 태도·강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레즈비언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 참가자에게 박진영 심사위원이 여성성을 찾으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반복해서 했다는 장면이었다.

심사평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설책 뒤에 실린 평론을 건너뛰듯심사평 부분을 시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나마 본 심사평들도 대부분 와 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사 대표가 심사위원이 겸하는 형식, 수많은 참가자들 가운데 즉시 데뷔할 우승자를 가리는 과정과 포맷의 공정성에 대해 특별히 비판적으로 논평하진 않았다. 대신 논평의 시도 자체를 거부했는데, 구체적으로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공정성이란 주제를 논하는 것이 지나친 엄숙주의라 평가했다.

Q: 이런 포맷에 있어서 공정성이라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심순덕)

A: 뭐 한 명을 경연을 안하고 올린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기회를 충분히 줬고그 정도면 됐다? 공정성? 뭐 쇼프론데 뭐그게 뭐 정치다, 그러면 공정성을 많이 따져야겠지? 포맷에 있어서 공정성이 아니라, 그거 가지고 뭘 할 거냐. 근데 그게 중간에서 떨어진 애들은 중간에 운이 안좋아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방송에 얼굴을 더 내밀지 못해서 떨어진 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걸까? 후자라면, 공정성 얘기를 할 거 같은데, 우승자 얘기면 공감 안가.

Figure 1 '엄숙주의'를 조롱하는 심순덕의 트윗 내용

현실 정치에 대한 뚜렷한 참여 의지가 보이는 반면, 프로그램의 재미와 이에 대한 정치적 해석 양자를 모두 거부한 이러한 양상은 기성의 대중가요와 팝,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인터뷰이의 근본적 반감, 가치 절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시청 의지가 뚜렷이 낮은 것에 대해 특별히 부연하지 않은 점, 인터뷰가 전체적으로 냉소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터뷰가 시작하기 전 심순덕은 예능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인터뷰의 가치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인터뷰이의 이러한 무관심한 태도는 TV로 표상되는 대중문화와 정치, 철학으로 표상되는 고급문화 간의 이분법이 내면화된 결과로 추측된다. 타협적 해독자로 분류된 세 수용자 모두 심순덕과 비슷한, 혹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대중문화, 고급문화를 막론한 - 소비 수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측은 근거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4. 결론 

심층 인터뷰 결과,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답한 김순기는 시청 의지가 높았으며, 심사평에 대한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포맷이 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정하다고 답해 지배적 해독자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의 주된 재미가 자식 같은참가자들이 힘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나가는 데에서 나온다고 답했다. 반면, 시청 의지가 비교적 높았으며, 심사평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재미를 위해 포맷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타협적 해독자로 분류된 이들 김하영, 오세창, 박연주 은 프로그램의 선호된 의미를 거부하지는 않으면서 자신들이 느낀 재미와 불만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시청 의지가 낮으며 심사평을 거부하고 텍스트에 대한 의미 부여를 엄숙주의라 치부한 심순덕은 타협적 해독 위치와 대항적 위치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해독 위치의 범주화가 이들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인터뷰이들이 내면화한 문화적 코드에 대한 분석이 충분하지 않았고, 인터뷰이의 숫자 또한 부족했음에도 불구, 이번 연구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사회 참여에 대한 열렬함이 즐거움, 혹은 풍요로운 의미의 덧댐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의 지향은 현상태에 대한 긍정이며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 않는 것, 이에 반해 진보의 지향은 잠재태를 향하며 그렇기에 소외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라고 판단해온 필자에게 이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명제였다.

그러나 인터넷 공론장에서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네티즌들이 벌이던 토론의 양상, 이번에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은 지금껏 정치적 회색분자 정도로 치부해왔던 타협적 해독자의 비평적 가능성을 드러냈다. 대중문화 텍스트의 의미를 포착하고, 이를 단순히 보이콧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할 수 있는 형식으로 비판·재생산하는 이들은 바로 적당히사회에 참여해온 타협적 해독자였던 것이다. 이들은 좌파 엘리트들이 자존심 때문에, 혹은 자만심 때문에 외면해온 대중문화와 즐거움이란 영역을 응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좌파 엘리트들이 보기에 비속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전문가의 그것만큼 정교한 논평을 내놓고 또 토론한다.       

그렇다면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채우는 수많은 네티즌들, 주말 저녁 TV 앞에 나른히 앉아 예능을 시청하며 팬질하는 이들을 단순히 잉여’, 둔탁한 이성과 감수성을 지닌 바보상자의 숭배자들로 취급할 수 있을까? 혹은 충분히 날카롭지 않은 정치적 태도를 빌미로 이들을 뭉뚱그려 비판할 수 있을까? 이번 연구는 이러한 의혹과 비판에 가려져 충분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던 보통의 수용자들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평범한 비평가들은 엘리트가 포착하지 못한, 그리고 개인이 결코 그 전체를 포착할 수도 없는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의미망을 지금도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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