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거울,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그리고 가상현실

거울,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그리고 가상현실

1. 거울의 메타포에 대해

거울을 보는 나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은 좌우가 반전되어 있기에 현실과 같지는 않은, 가닿을 수 없는, 그러나 나와 나를 둘러싼 대상세계를 지각시키고 내면화시킬 수 있는 어떤 이미지이다.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수용된 세계의 주관적 이미지를 거울이라는 도구, 거짓말하지 않을 것 같은 도구에 기대어 재확인한다. 거울의 이러한 특징과 기능은 여러 연구들과 예술 작업들의 모티프가 되었다. 그 중, 본고에서는 자끄 라깡의 거울단계 이론을 주축으로 하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를 경유해 가상현실 시스템의 기능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갈 것이다. 거울의 기능에 근거한 라깡의 이론은 가상현실 시스템의 발명으로부터 시기적으로는 앞서나, ‘외부적 매체에 의한 주체와 자아의 ()설정의 효과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먼저 라깡이 말하는 주체와 자아가 외재적 이미지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적 특성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2.1. 라깡의 거울단계 주체, 자아의 습득

라깡에 따르면, 주체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탄생에 앞서 존재하는 기표들의 연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선험적 감성 형식과 오성 형식을 갖추고 대상세계를 고유한 정신 능력 이성 - 으로 파악하는 주체에 대한 칸트적 이미지는 라깡에 의해 부정당한다. 그에 의하면 주체는 사실은 시니피앙의 호명 효과에 불과한 것이다.[1] 이렇듯 라깡은 소쉬르,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세워진 구조주의적 사유의 계보를 따른다.

그렇다면 이 기표(시니피앙)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쉬르가 말했다시피 사물에 대한 주관 내부의 개념을 뜻하는 기의(시니피에)와 결합해 기호를 이루는 청각 영상이다. 청각 영상은 순전히 물리적 사물인 실체적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의 정신적 흔적, 즉 감각이 우리에게 증언해 주는 소리의 재현이며, “감각적 실체.[2] 라깡은 소쉬르의 이 두 용어를 차용하는 동시에, 기표를 의식적, 무의식적 담론을 형성하고 주체를 발생시키는 근본 요소, 의미를 오직 기표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기표의 우위를 선언한다.[3]

이렇듯 주체를 배태한 기표의 연쇄라는 언어형식적 체계는 상징계라 불린다. 그런데 개인과 세계는 이러한 순수한 언어학적 요소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념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외부의 이미지에 근거한 상상차원에서의 과정이 필요하다. 라깡은 거울단계라 불리는 그의 이론에서, 아직 신체 활동에 미숙한 아이가 자신의 거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부터 이를 유추해낸다. 몸을 통제하는 데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통일된 상으로 다가오는 거울 속 자신의 이미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과정에 도취된다. 이러한 자기 외적, 허구적 이미지에 대한 동일시 오인méconnaissance -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념을 내면화하며, 이렇게 형성된 산물이 자아. 자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내면화한 방식대로 외부의 이미지들을 수용, 대상화한다. 세계의 이미지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이루어지는 자아의 이러한 활동 영역을 라깡은 상상계로 명명했다. 이렇듯 그는 일종의 착각에 의해 형성된 자아를 주체화의 필수적인 절차로 설정함으로써, 기존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전복을 꾀한다.   

요컨대 라캉의 주체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기표의 연쇄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주체가 언어의 형식으로 수용된 의미를 구조화한다면, 이미지를 받아들여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은 자아에 의해 수행된다. 그런데 이 자아는 거울에 비친 기능적으로 완벽한 나의 형상이라는 허구적 이미지를 내면화한 산물이기에 주체와 대립하며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신 활동이 타자적 이미지의 매개”, 이마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라깡의 이러한 사유는 인간에 대한 매체학적 이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마고가 비단 거울에 비친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마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이나 자신의 능력과 모습을 거울처럼 확인시켜주는 모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미디어와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 따른 인식 구조의 재구성을 설명해준다.[4] 특히 리얼리티의 감각 채널, 물리적 법칙, 현전감 등을 모방한 가상현실 시스템의 효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가상현실 시스템이 등장하기 전에 쓰인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그리고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는 매체가 지닌 규정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2.2.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이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는 그의 친구 비오이 까사레스와의 식사 중, 우크바르란 지역의 한 이교도 창시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의 수를 증식시키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듣고, 그 경구를 추적해나간다. 처음에 <<영미백과사전>>에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우크바르항목은 그 제호의 한 해적판본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우크바르에 대해 알게 된 허버트 에쉬란 사람에게 <<틀뢴의 제1백과사전>>이란 책을 선물받는다. 가상의 혹성인 틀뢴의 모든 것이 적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책은, 처음에는 그 존재를 믿지 않던 , 그 다음에는 모든 세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세계 곳곳에서 틀뢴의 존재를 증거하는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모두가 그것을 진짜인 것 마냥 믿기 시작한 것이다.

그 누가 질서정연한 혹성이라는 정밀하고 방대한 증거를 눈앞에 두고서도 틀뢴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인가? 현실 또한 질서정연하다고 반박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리라. 아마 현실 또한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은 여태까지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신적인 법 나는 비인간적 법이라고 번역한다 의 관점에서 번역할 때 그러하다는 말이다. (중략) 틀뢴과의 접촉과 그것이 가진 관습의 침투는 이 세계를 해체시켜 버렸다. 그것의 엄밀성에 현혹된 인류는 그것이 천사들의 엄밀성이 아닌 장기 고수들의 엄밀성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재차 망각해 간다.[5]

틀뢴은 리얼리티의 거울이고, 라깡이 거울의 기능으로서 지적한 것처럼 자아와 상상계를 구조화한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주인공인 혹은 여타의 사람들이 모두 유년기의 주체화를 거친 정상적인 이들임에도 불구, 대상세계와 자신 간의 상상적 관계를 재정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리얼리티의 문법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완전히 다른 지식 체계를 구비한 어떤 다른 세계가 이마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현실에서도 뉴스, , 인터넷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어떤 다른 세계의 단편을 수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자아와 주체의 재구조화라는 논지에서 가상현실 시스템의 효과가 규명될 수 있다.

3. 거울과 가상현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인간의 정신을 정립하는 이마고는 거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왔다. 그것이 문자의 발명이 됐든 인쇄 기술의 발명이 됐든, 매체 환경의 변곡점은 존재했고 이에 따라 인간의 표준 또한 변화해왔다. 그런데 컴퓨팅 기술이 이러한 매체사적 발전에 있어서 특별한 이유는 문자와 책으로 표상되는 상징계적 질서와 유화 등 각종 시각 표현 매체로 표상되는 상상계적 질서, 마지막으로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불가지론적 영역을 포착할 수 있는 사진과 비디오 기술이 하나로 종합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상현실 시스템이 라깡이 말한 세계의 세 가지 질서를 구현해낼 수 있다는 말은, 거울과 같은 리얼리티 기반의 단일감각적 이미지로 자아상을 고착화시키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거울이란 매체에 기반한 오인의 구조는 주체와 자아 사이의 간극을 그렇게 벌려놓진 못했다. 그 간극은 미성숙한 신체 감각과 비교적 성숙해보이는 자신의 이미지 사이의 거리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이미지(이마고)는 결국 거울이란 필름 위에 현상된 리얼리티였다. 그런데 리얼리티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구현,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 시스템의 발전에 말미암아 주체-자아, 상징계-상상계 간의 간극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즉 매우 정교하여 인지되기 힘드나, HMD 기기를 벗는 것과 같은 간단한 조작으로 전복될 수 있는 오인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제작자들과 게이머들은 이러한 탈부착형 자아에 이미 익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게이머들이 새로운 게임에 열광할 때마다 새로운 <<틀뢴의 제 1백과사전>>이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벌어진다. 아바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들은 자아를 커스터마이즈하며 오인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오히려 주체와 가상적 자아 간의 괴리 그 자체를 즐기며, 가상적 대상세계 속에 자신을 투영한다. 그러나 소설과 다른 점은 뇌가 허용하는 몰입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게이머는 주저없이 스스로를 대상세계로부터 추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게이머들이 자아/가상적 자아와 가상적 대상세계 간의 상상적 관계를 리얼리티에 대한 그것과 혼동하지 않는 이유는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로서의 리얼리티 기반의 자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종의 소규모 가상현실 접속부로서의 스마트 디바이스가 점점 더 낮은 연령대에까지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깡의 거울단계 이론도 생후 6~8개월 사이의 유아를 관찰 대상으로 제출된 바, 자아의 발생은 새로운 국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탈부착형 자아가 인간의 표준 규격으로 자리잡을 구조변동의 시기를 위해, 오늘날의 매체 환경과 정합성이 있는 새로운 정신분석학 이론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출판사. 2007.

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윤원화 역. 현실문화. 2011.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민음사. 1990.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틀뢴, 우크바르, 그리고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픽션들>. 황병하 역. 민음사. 2006.




[1]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출판사. 2007. p.118.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민음사. 1990. p.84.
[3] 김석. supra note 1. p.116.
[4] Ibid. p.148.
[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틀뢴, 우크바르, 그리고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픽션들>. 황병하 역. 민음사. 2006.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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